윤석래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사간, 도승지, 병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호둔정(鈍靜), 만회(晩晦)
  • 자중길(仲吉)
인물/전통 인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665년(현종 6)
  • 사망 연도1725년(영조 1)
  • 본관파평(坡平, 지금의 경기도 파주)
  • 주요 관직동부승지|사간|도승지|병조참판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양수 (청주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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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사간, 도승지, 병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중길(仲吉), 호는 둔정(鈍靜)·만회(晩晦). 윤영(尹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윤지선(尹止善)이다. 아버지는 부윤 윤이(尹理)이며, 어머니는 이의윤(李義胤)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90년(숙종 16)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710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 숭릉직장(崇陵直長)이 되었다. 1714년 지평을 거쳐 필선·장령·헌납·집의 등을 역임하였다. 1716년 병신처분(丙申處分) 뒤 노론 권상하(權尙夏)를 무고한 오명윤(吳命尹)의 처벌을 요청하였다.

그 뒤 1719년 동부승지·사간·우부승지를 지냈고, 이듬해 경종의 즉위로 소론이 득세하자 사직하였다가 다시 사간에 재임되었다. 1722년(경종 2) 동래부사로 재임중에 신임옥사로 노론이 실각하고 소론이 집권하게 되자 사직하고 물러났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하면서 노론이 재집권하자 판결사·참찬관이 되었다. 이 때 귀양가있던 정호(鄭澔)의 서용을 청하여 이를 실현시켰고, 그 뒤 도승지를 거쳐 병조참판에 이르렀다. 저서로는 『문견록(聞見錄)』이 있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경종실록(景宗實錄)』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사마방목(司馬榜目)』

  • - 『고산집(鼓山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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