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아버지는 파릉군(坡陵君) 윤찬(尹巑), 어머니는 의성김씨(義城金氏) 생원(生員) 김제삼(金齊參)의 딸이다.
무과에 급제하고 내외의 무관직을 역임하였으며, 사과(司果)로 한직에 머물렀다. 1622년(광해군 14) 훈련원첨정 이정배(李廷培)와 함께 조총(鳥銃)·환도(環刀)·대포(大砲)·화약 등을 만들어 포상받아 선전관이 되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상주영장으로 휘하군대와 함께 부전(赴戰)하였는데, 다음해 쌍령(雙嶺)전투에서 창원부사 백선남(白善南), 안동영장 선세강(宣世綱) 등과 함께 분전하다 전사하였다. 왕이 명하여 자손을 녹용(錄用)하고 가족에게 월봉을 지급하게 하였으며, 후일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영원군(鈴原君)으로 추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