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선

  • 역사
  • 인물
  • 개항기
  •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 때, 구국단을 조직하였고, 임시정부에 가담하여 정보 제공 및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칭
  • 이칭철(喆)
인물/근현대 인물
  • 사망 연도1942년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85년(고종 22)
  • 출생지서울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현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구국단을 조직하였고, 임시정부에 가담하여 정보 제공 및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일명 철(喆). 서울 출신. 1917년 서울에서 제자들에게 배일사상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독립운동을 계획하였다. 1919년 4월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어 7월에 연통제(聯通制)가 실시되자 이에 관계하면서 정보의 제공과 군자금을 모금, 송달하였다.

같은 해 10월 이후 서울 자택에서 동지 10여명과 비밀리에 구국단(救國團)을 조직하고 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11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국내외의 민족독립운동을 통제적으로 지휘하고 수렴하기 위하여 연통제와 교통국제도를 활용할 때 이에 적극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이때 그 능력을 인정받아 임시정부 요인 이동녕(李東寧) 등으로부터 12도 선정사(宣政使)로 임명받고 지하조직을 보다 강화하였다. 인적자원의 확보와 군자금모금, 정보의 제공, 국내동포의 임시정부 위치인식 등 임시정부가 할 선정(宣政)의 일을 충실히 전달, 터득시켰다.

1921년 동지들에게 임시정부의 8가지 독립운동의 방향을 제시하고 그 뜻에 부합될 사업을 전개하기로 하고 자택에서 어대선(魚大善) 등 10여명과 같이 독립시위운동을 준비하였다. 시위에 필요한 독립사상의 전달과 그 고취에 관련된 서류를 제작하다가 미행하던 일본경찰에 잡혔다.

1922년 3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년형을 선고받고 경성복심법원에 항소하였으나 기각되었다.

상훈과 추모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대한민국임시정부사』(이현희, 집문당, 1982)

  • - 『동아일보(東亞日報)』

  • - 「경성복심법원판결문(京城覆審法院判決文)」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