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경림(景霖). 윤사은(尹師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윤걸(尹傑)이다. 아버지는 돈녕부첨정 윤회정(尹懷貞)이며, 어머니는 임천조씨(林川趙氏)로 군자감정(軍資監正) 조익(趙翊)의 딸이다.
1543년(중종 38)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552년(명종 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전적을 거쳐 1555년 암행어사로 나갔다가 이어 홍문관정자, 저작·박사·수찬·정언 등을 역임하고, 이듬해 황해도암행어사로 재차 나갔다.
1557년 병조좌랑에 재직중 이량(李樑)에게 아부하였다는 탄핵을 받고 파직당하여 적성으로 돌아와 5, 6년 지내다가, 1562년 동지중추부사로 다시 기용되었다. 외직으로 영평현령·한산군수를 역임하면서 백성을 다스림에 청간(淸簡)하였으며, 간악한 무리를 적발하는 데는 귀신과 같았다고 한다.
1566년 성균관직강·장악원첨정·성균관사성 등을 역임하고 지제교를 겸하였다. 그 뒤 광주목사(廣州牧使)가 되었을 때도 사관의 직책을 겸직하였고, 이어 사헌부장령·집의 등을 역임하였다. 1568년(선조 1) 종성부사를 거쳐, 동래부사가 되었다가 사건으로 사퇴하고 돌아와 이듬해 승정원의 동부승지가 되어 경연참찬관을 겸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