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부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중추원부사, 동지중추원사, 전라도병마도절제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시호정평(靖平)
인물/전통 인물
  • 본관서흥(瑞興)
  • 사망 연도1451년(문종 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중추원부사|동지중추원사|전라도병마도절제사|서흥 윤씨 시조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경주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태진 (서울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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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중추원부사, 동지중추원사, 전라도병마도절제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서흥(瑞興). 경주 출신. 명나라 환관(宦官) 윤봉(尹鳳)의 동생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윤봉은 원래 우리나라 사람으로 이조판서 이빈(李彬)의 집에서 자라다가 중국 조정에 들어가게 되었고, 황제의 총애를 받아 우리나라에 사신으로 여러 차례 오게 되었다. 특히, 세종 때 금과 은의 세공(歲貢)을 면제받는 데 공로가 컸다.

1427년(세종 9) 윤봉의 요청에 의하여 대호군이 되고, 1429년 상호군을 거쳐 같은 해 금은세공의 면제와 관련하여 첨총제(僉摠制)를 제수받고 논과 밭 80결(結)을 받았다.

1431년 동지총제(同知摠制), 1432년 중추원부사에 오르고, 1439년 동지중추원사, 1446년 전라도병마도절제사, 1450년(문종 즉위년) 지중추원사에 이르렀다. 윤봉의 요청에 따라 여러 차례 중국에 내왕하였고, 윤중부의 아들 윤길생(尹吉生)도 윤봉이 양자로 삼은 뒤 자주 중국에 내왕하였다.

1456년(세조 2) 윤봉이 세조를 조선 국왕으로 인정하는 중국황제의 조칙(詔勅)과 고명(誥命)을 가지고 사신으로 왔을 때 서흥을 향관(鄕貫)으로 해줄 것을 왕에게 요청, 세조가 허락함으로써 서흥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고, 서흥윤씨의 시조가 되었다. 시호는 정평(靖平)이다.

참고문헌

  • - 『세종실록(世宗實錄)』

  • - 『문종실록(文宗實錄)』

  • - 『세조실록(世祖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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