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중회(仲晦). 고려 예종 때 시중 윤관(尹瓘)의 16세손이다. 영평군 윤척(尹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윤승예(尹承禮)이다. 아버지는 경승부윤(慶承府尹) 윤규(尹珪)이며, 어머니는 순흥부사 이원적(李元𥛚)의 딸이다.
1411년(태종 11) 사마시에 합격하여 음보로 사직단직(社稷壇直)·군자직장(軍資直長)이 되었다. 1420년(세종 2)에 직장으로 진사시에 합격한 뒤 승문원박사에 임명되고, 승정원주서를 거쳐 1428년 장령, 1432년에 지사간원사(知司諫院事)·동부대언(同副代言)이 되었다. 1434년에 우부승지, 그뒤 좌승지에 승진되었다.
1441년 경기도관찰사, 1444년 예조참판·판한성부사, 1446년에 형조판서, 그 뒤에 공조판서·호조판서 등 요직을 두루 거쳐 1452년(단종 즉위년) 우참찬이 되었다. 죽은 뒤 1455년(세조 1) 좌익공신 2등에 추록되고 성삼문(成三問)이 비명을 지었다. 시호는 공간(恭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