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혼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명릉참봉, 정언, 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천서(泉西)
  • 회이(晦爾)
인물/전통 인물
  • 본관파평(坡平, 지금의 경기도 파주)
  • 사망 연도1725년(영조 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명릉참봉(明陵參奉)|정언|지평
  • 출생 연도1676년(숙종 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동익 (경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명릉참봉, 정언, 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회이(晦爾), 호는 천서(泉西). 관찰사 윤희길(尹希吉)의 5대손이며, 윤헌징(尹獻徵)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윤침(尹琛)이고, 아버지는 윤동명(尹東鳴)이다. 어머니는 한성(韓宬)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열살에 이미 경사(經史)를 두루 섭렵하였는데, 1707년(숙종 33)에 권상하(權尙夏)의 문하에 들어가 『대학』의 의의(疑義)를 논하니, 권상하로부터 학문이 높음을 인정받았다.

그 뒤 신경(申敬)·한원진(韓元震)·현상벽(玄尙璧) 등과 교유하면서 학문과 덕행을 닦다가, 1709년 이들과 함께 권상하를 따라 화양동에 들어가 만동묘(萬東廟) 건립에 참여하였다.

1714년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그 뒤 학행(學行)으로 천거를 받아 1719년에는 명릉참봉(明陵參奉)이 되기도 하였다. 이 해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정언·지평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 - 『숙종실록(肅宗實錄)』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사마방목(司馬榜目)』

  • - 『병계집(屛溪集)』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