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혼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명릉참봉, 정언, 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회이(晦爾)
천서(泉西)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76년(숙종 2)
사망 연도
1725년(영조 1)
본관
파평(坡平, 지금의 경기도 파주)
주요 관직
명릉참봉(明陵參奉)|정언|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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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명릉참봉, 정언, 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회이(晦爾), 호는 천서(泉西). 관찰사 윤희길(尹希吉)의 5대손이며, 윤헌징(尹獻徵)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윤침(尹琛)이고, 아버지는 윤동명(尹東鳴)이다. 어머니는 한성(韓宬)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열살에 이미 경사(經史)를 두루 섭렵하였는데, 1707년(숙종 33)에 권상하(權尙夏)의 문하에 들어가 『대학』의 의의(疑義)를 논하니, 권상하로부터 학문이 높음을 인정받았다.

그 뒤 신경(申敬)·한원진(韓元震)·현상벽(玄尙璧) 등과 교유하면서 학문과 덕행을 닦다가, 1709년 이들과 함께 권상하를 따라 화양동에 들어가 만동묘(萬東廟) 건립에 참여하였다.

1714년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그 뒤 학행(學行)으로 천거를 받아 1719년에는 명릉참봉(明陵參奉)이 되기도 하였다. 이 해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정언·지평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영조실록(英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사마방목(司馬榜目)』
『병계집(屛溪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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