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회이(晦爾), 호는 천서(泉西). 관찰사 윤희길(尹希吉)의 5대손이며, 윤헌징(尹獻徵)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윤침(尹琛)이고, 아버지는 윤동명(尹東鳴)이다. 어머니는 한성(韓宬)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열살에 이미 경사(經史)를 두루 섭렵하였는데, 1707년(숙종 33)에 권상하(權尙夏)의 문하에 들어가 『대학』의 의의(疑義)를 논하니, 권상하로부터 학문이 높음을 인정받았다.
그 뒤 신경(申敬)·한원진(韓元震)·현상벽(玄尙璧) 등과 교유하면서 학문과 덕행을 닦다가, 1709년 이들과 함께 권상하를 따라 화양동에 들어가 만동묘(萬東廟) 건립에 참여하였다.
1714년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그 뒤 학행(學行)으로 천거를 받아 1719년에는 명릉참봉(明陵參奉)이 되기도 하였다. 이 해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문한관(文翰官)을 거쳐 정언·지평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