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0년(우왕 6)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642년(인조 20)에 용산리에서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1907년에 배태성(裵台成), 1923년에 김용준(金溶俊), 1927년에 이기태(李起台) · 최영원(崔泳元), 1934년에 전재구(田載球), 1954년에 김익권(金益權), 1956년에 김인구(金獜九), 1963년에 이강원(李康源)이 각각 중수하였다.
그 뒤 1970년에 대성전과 동재(東齋)를 중수하였고, 1972년에 대대적으로 개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 명륜당 · 동재 · 서재(西齋) · 내삼문(內三門) · 외삼문(外三門)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 · 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이 향교의 대성전은 1997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으나, 1997년 지정 해제되었다. 소장전적은 판본 여러 권과 사본 9종 14책이 있다. 이 가운데『은진현갑오식유생(恩津縣甲午式儒生)』 · 『청금록(靑衿錄)』 · 『숭모계안(崇慕稧案)』 등은 이 지방의 향토사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현재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