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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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 김용구가 1907년 8월 전라남도에서 기삼연과 의병을 일으켜 1908년 4월까지 활동한 것을 기록한 의병록. 일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성수
  • 최종수정 2024년 0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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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의병 김용구가 1907년 8월 전라남도에서 기삼연과 의병을 일으켜 1908년 4월까지 활동한 것을 기록한 의병록. 일기.

서지적 사항

1907년 8월 정미의병 때 전라남도에서 기삼연(奇參衍)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켜, 이듬해 4월 13일까지 약 8개월간에 걸쳐 활동한 것을 기록한 것으로 『후은김선생신담록(後隱金先生薪膽錄)』에 수록되어 있다.

정미년 호남의병의 선도자 김용구가 1907년 8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영광 · 함평 일대에서 싸우다가 부장의 한 사람인 박도경(朴道京)에게 군권을 넘기고 전라북도 금산으로 은신하기까지의 의병종군 일기이다.

내용

김용구는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1906년 일심계(一心契)를 조직하여 거병에 대비하고, 1907년 8월 8일 영광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같은 달 12일 영광읍을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여 후퇴하였다.

그 뒤 김용구는 지리산 상봉에서 고광순(高光洵)의 부대를 만나 합진(合陣)하고, 9월 24일 장성에서 기삼연을 맹주로 삼고 자신을 도통령(都統領)으로 하는 의병대를 조직하여, 호남에서 가장 강력한 의병군을 창설하였다. 선봉에 김준(金準), 중군에 이철형(李哲衡), 후군에 이남규(李南圭), 호군에 김태수(金泰洙), 참모에 김익중(金翼中) 등이 임명되었다.

그리고 김용구는 의병부대를 이끌며 고창전투(9.26), 장성 백양사전투(10.25.∼11.7), 영광전투(11.19), 고부전투(12.13), 담양 추월산성전투(12.27) 등을 치렀다. 그런데 그는 백양사전투에서 아들 기봉(起鳳)을 잃었으며, 추월산성전투에서 기삼연이 부상을 당하자 군권을 이양받았다.

1908년에는 장성전투(1.19), 고창전투(2.19), 장성 토정리전투, 장성 송치전투(2.24), 영광 육창면 오동리전투(3.2), 영광 구수산전투(3.12), 무장 선운사전투(4.11) 등을 치렀다. 4월 17일 무장 와공면 유동(지금의 공음면)에서 적과 교전 중 부상을 당하여 박도경에게 군권을 넘겨주고 은거하게 되었다. 기우만(奇宇萬)의 후손 성도가 소장하고 있다.

참고문헌

  • - 『독립운동사자료집』 2(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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