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사헌부지평, 광주목사, 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반정 초기에 조정의 대소의 글씨를 잘 써서 왕으로부터 상으로 『동문선』 한 질을 하사받는 영광을 입었다. 곧 승진하여 전적·감찰 등이 되었고, 1624년 병조좌랑·사간원정언·사헌부지평이 되었다.
이 해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언관으로 금령을 대대적으로 행하여 난 후의 처리를 잘하여냈고, 1625년에 홍문관수찬·사헌부지평·직강 등을 거쳐, 홍문관교리가 되어 최명길(崔鳴吉) 등과 함께 서얼금고법(庶孼禁錮法) 폐지를 진언하였다. 이어서 사간원헌납·종성부사가 되었다.
1627년 정묘호란 직후에는 광주목사(廣州牧使)로 부임하였는데, 서울과 가까워서 귀족공경(貴族公卿)이 많은 지방이었으나 일을 공정하게 잘 처리하여 칭송을 들었다. 곧이어 황해도감사가 되어 이이(李珥)의 저서 『격몽요결(擊蒙要訣)』을 수백본 만들어 올려서 중앙과 지방에 반포하게 하였다.
그 뒤 참찬관·양양부사·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글씨가 뛰어났는데 특히 초서와 예서를 잘 썼다고 한다.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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