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용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사헌부지평, 광주목사, 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계곡(桂谷), 두곡(杜谷)
  • 여복(汝復)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이괄(李适)의 난|정묘호란
  • 본관덕수(德水, 지금의 경기도 개풍)
  • 사망 연도1635년(인조 13)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사간원정언|사헌부지평|광주목사(廣州牧使)|전라도관찰사
  • 출생 연도1580년(선조 1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정자 (전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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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사헌부지평, 광주목사, 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복(汝復), 호는 두곡(杜谷)·계곡(桂谷). 이함(李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인상(李麟祥)이다. 아버지는 군수 이통(李通)이며, 어머니는 영의정 유전(柳㙉)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8년(광해군 즉위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18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보직을 받았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후 승문원정자가 되었으며, 곧이어 저작을 거쳐 주서가 되었다.

반정 초기에 조정의 대소의 글씨를 잘 써서 왕으로부터 상으로 『동문선』 한 질을 하사받는 영광을 입었다. 곧 승진하여 전적·감찰 등이 되었고, 1624년 병조좌랑·사간원정언·사헌부지평이 되었다.

이 해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언관으로 금령을 대대적으로 행하여 난 후의 처리를 잘하여냈고, 1625년에 홍문관수찬·사헌부지평·직강 등을 거쳐, 홍문관교리가 되어 최명길(崔鳴吉) 등과 함께 서얼금고법(庶孼禁錮法) 폐지를 진언하였다. 이어서 사간원헌납·종성부사가 되었다.

1627년 정묘호란 직후에는 광주목사(廣州牧使)로 부임하였는데, 서울과 가까워서 귀족공경(貴族公卿)이 많은 지방이었으나 일을 공정하게 잘 처리하여 칭송을 들었다. 곧이어 황해도감사가 되어 이이(李珥)의 저서 『격몽요결(擊蒙要訣)』을 수백본 만들어 올려서 중앙과 지방에 반포하게 하였다.

그 뒤 참찬관·양양부사·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글씨가 뛰어났는데 특히 초서와 예서를 잘 썼다고 한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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