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하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 개항기
조선후기 한성부판윤, 공조판서,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관리.
이칭
  • 시호양숙(襄肅)
  • 여회(汝會)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전주(全州)
  • 사망 연도1891년(고종 28)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11년(순조 1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윤경로 (한성대학, 한국사)
  • 최종수정 2025년 05월 30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후기 한성부판윤, 공조판서,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관리.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회(汝會). 광평대군 이여(李璵)의 후손이자 영의정을 지낸 이유(李濡)의 6대손이다. 증조부는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이의헌(李義獻), 조부는 이복연(李復淵), 부친은 이인달(李寅達)이다.

1863년 고종이 즉위하고 흥선대원군이 집권하자 훈련대장 겸 좌포도대장을 지냈고, 1866년 병인양요 때에는 한성부판윤 · 형조판서 · 강화부유수 · 어영대장 · 공조판서를 지냈다.

그해 대원군이 천주교도를 탄압할 때 포도대장으로서 교도들을 수없이 학살하였는데, 죄인들을 낙동(駱洞)의 자기 집에서 심문하였으므로 사람들이 이경하를 염라대왕처럼 무서워하여 ‘낙동염라’라는 별칭도 있다.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공격하고 한강을 봉쇄하자 순무사(巡撫使)로 발탁되어 도성방비의 책임자로 출진하였다. 1882년 무위대장(武衛大將)으로 재직중 임오군란의 책임을 지고 파면되어 전라도 고금도에 유배되었으나, 대원군의 깊은 신임으로 1884년 풀려나와 좌포도대장을 지냈다.

그해 12월에 일어난 갑신정변 때에는 조대비 · 민비 · 세자(순종) 등을 아들 이범진(李範晉)의 집에 피난시키기도 하였다. 주로 군사 · 경찰의 요직을 맡아 치안을 담당하였다. 시호는 양숙(襄肅)이다.

참고문헌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남계집(南溪集)』

  • - 『근세조선정감(近世朝鮮政鑑)』

주석

  • 주1

    : 가계 : 『무보(武譜)』 天(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K2-1741]).

  • 주2

    : 순무사 역임 : 고종실록3권, 1866년(고종 3) 9월 8일. "순무사 이경하에게 양이들을 엄하게 단속하도록 명하다"

  • 주3

    : 고금도 유배 : 고종실록19권, 1882년(고종 19) 7월 18일. "이경하와 신정희를 배소를 정하여 압송하다"

  • 주4

    : 시호 추증 : 순종실록4권, 1910년(순종 3) 8월 26일. "이간 등 57명에게 시호를 주고 이총 등 3명의 시호를 고쳐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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