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규상(揆常). 경기도 광주 출신. 1910년 이후 동삼성으로 망명한 뒤 1916년 간도 용정(龍井)에서 무장독립운동단체인 동맹결사대(同盟決死隊)를 조직하고, 그 주요참모로서 20여명의 동지를 규합, 가담시켰다.
이들과 같이 훈련하던 중 1919년 8월 용정에서 일본헌병에게 잡혀 일본영사관에 송치되어 구속, 고문을 당하였다. 여기서 일제의 추방명령을 받고 함경북도 경성군으로 돌아왔다.
1920년초 국권회복을 최대목표로 결사단지대(決死斷指隊)를 조직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긴밀한 연락을 통하여 연통제(聯通制)에 가담, 활동하였다. 경성군에서 연통제조직을 완료하고 임시정부와 업무연락, 군자금송달, 기밀문서의 수발 등 많은 활동을 하다가 일본헌병에게 잡혀 1920년 8월 15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형을 언도받고 함흥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복역중에도 3·1운동기념일이나, 동지들을 작업장에서 만나기만 하면 그들을 격려하여 옥중만세운동을 자주 일으키곤 하였다. 이럴 때마다 독방에 감금되어 고문 등의 잔혹한 형벌을 받았다.
일제의 회유를 받을 때에는 광복을 격렬히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격렬하고 과감한 독립투쟁으로 인하여 가해진 사형(私刑)으로 옥사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