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능권 ()

근대사
인물
대한제국기 때, 육군대장으로 근무하다가 군대 해산 이후 강화진위대의 해산 군인들을 규합하여 대동창의진을 결성한 의병장.
이칭
이칭
능한(能漢)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64년(고종 1)
사망 연도
1909년(순종 2)
출생지
경기도 강화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대한제국기 때, 육군대장으로 근무하다가 군대 해산 이후 강화진위대의 해산 군인들을 규합하여 대동창의진을 결성한 의병장.
생애 및 활동사항

별명은 능한(能漢). 경기도 강화 출신. 한국군대의 육군대장으로서 1905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중인 만국평화회의(萬國平和會議)에 참가하러 가는 이준(李儁) 일행을 호위하여 일본군 수비대의 감시망을 뚫고 국외로 회송하였다.

1907년 군대해산령으로 해산된 강화진위대(江華鎭衛隊)의 군인 300여 명을 규합, 편성한 의병부대의 의병장이 되어 강화도에서 일본군과 접전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08년 의병부대를 대동창의진(大同倡義陣)이라 칭하고 이호춘(李浩春)·유성준(兪成俊)·김추옥(金秋玉)·여만복(呂萬卜) 등과 더불어 강화군 길상면의 방의표(方宜杓)로부터 군자금 1,500냥을 조달하는 등 11개 곳에서 4만3800냥의 군자금을 조달하였다.

또한 강화도 전등사에 은닉해 둔 무기를 일본군에게 넘겨준 송계찬(宋戒燦)을 살해함으로써 이적행위자에 대하여 경고하였다.

그 뒤 강화도를 중심으로 의병활동을 하던 중 일본군에게 붙잡혀 1909년 9월 27일 경성공소원(京城控訴院)에서 강도 및 모살죄로 교수형을 언도받은 뒤 그 해 11월 죽었다.

상훈과 추모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강화사(江華史)』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독립유공자공훈록』1(국가보훈처, 1986)
『독립운동사자료집별집』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경성공소원판결문(京城控訴院判決文)」
집필자
박성수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