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이조참판, 대사간, 함경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72년 홍문관수찬이 된 이래 정언·이조좌랑·이조정랑 등을 거쳐 국장도감의 낭청이 되었다. 다시 겸문학을 거쳐 1674년 동부승지에 발탁되었다.
그 뒤 이조참의·승지·대사간·부교리·대사성·대사헌·이조참판 등의 청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숙종 초의 남인정권에서 많은 활약을 하였다. 1677년(숙종 3) 대제학으로 백골징포(白骨徵布)·황구첨정(黃口簽丁)과 같은 군포(軍布)의 폐단과 서북지방의 전세(田稅)문제에 대하여 과감한 개혁을 건의하기도 하였다.
그 뒤 이조참판·대사간·부제학 등을 역임하고, 1679년 함경도관찰사로 외직에 나갔다가 다음해에 이조참판이 되었으나, 경신대출척으로 파직되어 폐서인이 되었다. 1682년 직첩을 환수받았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참고문헌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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