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기중(基仲), 호는 퇴촌(退村). 이희검(李希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수광(李睟光)이다. 아버지는 영의정 이성구(李聖求)이고,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한림사 권흔(權昕)의 딸이다.
1650년(효종 1)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다. 같은해 동료들을 이끌고 당론문제로 상소하자, 왕이 비지(批旨)를 내려 학업에만 열심히 하라고 당부하였다. 곧 문음으로 입사하여 여러 관직을 거친 뒤 1668년(현종 9) 의성현령이 되었다. 이 해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72년 홍문관수찬이 된 이래 정언·이조좌랑·이조정랑 등을 거쳐 국장도감의 낭청이 되었다. 다시 겸문학을 거쳐 1674년 동부승지에 발탁되었다.
그 뒤 이조참의·승지·대사간·부교리·대사성·대사헌·이조참판 등의 청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숙종 초의 남인정권에서 많은 활약을 하였다. 1677년(숙종 3) 대제학으로 백골징포(白骨徵布)·황구첨정(黃口簽丁)과 같은 군포(軍布)의 폐단과 서북지방의 전세(田稅)문제에 대하여 과감한 개혁을 건의하기도 하였다.
그 뒤 이조참판·대사간·부제학 등을 역임하고, 1679년 함경도관찰사로 외직에 나갔다가 다음해에 이조참판이 되었으나, 경신대출척으로 파직되어 폐서인이 되었다. 1682년 직첩을 환수받았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