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자문(子文), 호는 한천(寒泉). 이치(李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덕언(李德言)이다. 아버지는 이훤(李烜)이다.
일찍이 생원시에 합격하고, 1676년(숙종 2)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곧 문한관(文翰官)에 임명되었다.
1682년 지평에 승진하여 다음해에 전라도선유어사(全羅道宣諭御史)가 되어 임진왜란 이래의 충신·효자·열녀를 찾아내어 조정에 보고, 포상하도록 하였다. 이어서 정언·장령을 거쳐 1689년에 종성부사가 되어 혜정(惠政)을 베풀어 왕으로부터 비단을 하사받았다.
곧 경직(京職)에 돌아왔으나 기사환국으로 파직되어 산직(散職: 실직이 없는 관직)에 머물다가 1694년 갑술옥사 이후 승지에 발탁되었으며, 다음해에 병조참판에 특진되었다. 1696년 한성부우윤으로 직사를 잘못 처리하여 양사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다음해에 함경도관찰사가 되어 외직에 나갔다가 귀경하였는데, 안주목사로 있을 때 백성들이 이동욱의 생사당(生祠堂)을 만든 일로 인하여 대간의 탄핵을 받았다. 1706년 도승지에 임명되었고 이어서 예조참판이 되었다. 일찍이 풍덕(豊德)에 있는 흥교사 사적비(興敎寺事蹟碑)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