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보(眞寶). 자는 군칙(君則) · 자강(子剛), 호는 나은(懶隱). 아버지는 이운익(李雲翼)이며, 어머니는 김기후(金基厚)의 딸이다.
1675년(숙종 1) 진사가 되고, 1677년 증광회시에 장원하였으나 파방(罷榜)되었다가 1683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687년 창락도찰방(昌樂道察訪)에 임명되었으며, 1689년 왕명으로 한림을 뽑을 때 영의정 권대운(權大運)의 천거로 수천(首薦)이 되었다.
성균관전적을 거쳐 홍문관부수찬에 제수되었으나 기사환국 때 인현왕후(仁顯王后)의 폐위를 반대하여 죄를 입은 박태보(朴泰輔) · 오두인(吳斗寅) 등을 신구하다가 양양현감으로 좌천당하였다.
그 뒤 사간원헌납 · 이조좌랑 · 홍문관교리 등에 임명되었으나 그 때마다 사직하고 귀향하였으므로 사람들은 소퇴계(小退溪)라 일컬었다. 낙향한 뒤에도 계속하여 사헌부집의 · 호조참의 · 삼척도호부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으며, 사직의 상소와 함께 그때마다 직언으로 시정의 개선책을 건의하였다.
1741년(영조 17)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1845년(현종 11) 예천의 원산서원(元山書院)에 봉안되었다. 저서로는 『나은문집(懶隱文集)』이 있다. 시호는 충간(忠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