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첨서승추부사, 대사간,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392년(공양왕 4) 정몽주(鄭夢周)가 살해되자, 그 일당으로 몰려 계림(鷄林)에 유배되었다가 곧 풀려나서 공주에 은거하였다. 1399년(정종 1) 좌간의대부로 등용되고, 이듬해인 1400년에 이방간(李芳幹)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좌명공신(佐命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곧 좌군동지총제가 되었고, 계림군(鷄林君)으로 봉작되었다. 1402년(태종 2) 첨서승추부사(僉書承樞府事)가 되었다가 그 해 대사간을 거쳐 공조판서에 승진되었다. 1404년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곧 대사헌이 되었다.
이듬해에 예문관대제학이 되었고, 1407년 경연관을 거쳐 세자의 스승인 좌빈객(左賓客)을 지냈으며, 1408년에 지의정부사 겸 판경승부사에 이르렀다. 태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경절(景節)이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정종실록(定宗實錄)』
- 『태종실록(太宗實錄)』
- 『해동잡록(海東雜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석탄집(石灘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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