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대교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와 동작구 본동을 연결하는 다리이다. 1900년에 건설된 한강철교 이후 최초로 한강을 가로지르는 인도교로 건설되었다. 이 때문에 개통 초기에는 제1한강교라고 불리었다. 1917년에 사람과 우마차가 다니는 인도교로 건설되었다. 현재는 차량과 사람이 모두 통행할 수 있다. 서울 도심과 여의도 동부의 노량진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에서 남쪽방면의 노량진으로 통하는 가장 중요한 관문 위치라 할 수 있다. 한강대교를 이용하는 자동차의 평균 통행량은 매년 감소하고 있다.
1917년에 사람과 우마차가 다니도록 인도교로 건설된 교량이다. 현재는 차량과 사람이 모두 통행할 수 있으며, 서울 도심과 여의도 동부의 노량진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강대교는 1900년에 건설된 한강철교 이후 최초로 한강을 가로지르는 인도교로 건설된 것이다. 이 때문에 개통 초기에는 제1한강교라고 불리었다. 1912년에 교량가설계획을 수립한 후 1917년 10월에 준공되었다.
1925년 7월의 을축년 대홍수로 중지도에서 용산쪽으로 건설되었던 소교가 유실되었다. 1929년 9월에 소교를 재개통하였고 폭은 18m로 확장되었다. 너비 36.6m, 길이 841.5m이고 교량 중간에 중지도가 있는 한강상 최초의 도로교이다.
한강대교는 서울에서 남쪽방면의 노량진으로 통하는 가장 중요한 관문위치라 할 수 있다. 서울의 관문인 한강대교 건설에는 당시 총공사비 84만 3,000원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노량진 쪽에는 경간 60m인 3운(運) 한강소교를 설치하고 양쪽 다리 중간은 401m의 둑을 쌓아 연결하였다.
1900년 한강철교가 가설되고 17년 동안 인도교가 가설되지 않은 것은 당시의 도시내 교통수단이 보행위주였으며 화물은 철도와 지게로서 운송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한반도에 민간인의 영업차가 들어온 것이 1912년이었고 이때부터 다리가설 계획을 수립하게 되었다.
이 다리는 한강철교의 낡은 자재를 이용하여 가설하였으므로 폭이 좁고 중앙차도 4m, 좌우측보도는 각 1m에 불과하였다. 그 후 1925년에 있었던 을축년 대홍수 때 중간둑이 유실되어 용산측 한강소교가 위험한 상태에 놓이게 되자 제1차로 한강소교를 철폐하고 종래의 둑을 쌓았던 곳까지 연장하여 459m의 대다리 가설공사를 1927년 5월에 착수하여 1929년 9월에 준공하고 9월 18일에 파교식을 거행하였다. 당시 120만원의 공사비가 소요되었다.
한편, 노량진의 본동쪽 한강교는 종전대로 사용하다가 1934년 3개년 계획으로 공사비 251만 8,000원을 들여서 현재의 타이드아치(tied arch) 형식의 다리로 다시 1937년에 준공하였는데, 이 때 한 한국 다리 기술자가 감독으로 참여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후 1950년 6·25동란으로 타이드아치 3경간이 파괴되었던 것이 1957년 1월에 복구공사를 착수하여 1958년 5월 15일에 준공되어 서울의 명물이었던 한강대교가 새로운 모습을 되찾게 된 것이다. 1981년 원래의 한강인도교 하류 쪽에 전과 동일한 6경간 타이드아치를, 그리고 거더교 구간에서 상류측에 19경간의 판형교를 가설하여 교량을 완전히 2배로 확장하였는데, 이때부터 이름이 한강대교로 바뀌었다.
한강인도교가 처음 건설되었을 당시부터 S자형의 평면노선이었던 것을 대칭으로 확장한 것이다. 그 동안 차량의 증가로 인하여 기존의 구교량만으로는 폭주하는 교통량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고, 신설된 제1한강교∼관악구청간 도로에 의하여 부가되는 도로교통량의 처리도 문제가 되어 불가피하게 확장공사를 하였다.
1차 다리건설은 상부가 핀 프랫 트러스(pin pratt truss) 강구조로 최대경간 60.6m이고 교각의 기초공법은 우물통공법을 채용했었다.
2차 다리 건설시에는 리벳팅 타이드아치 강구조로 최대 경간이 63.55m인 다리, 최대경간 28.787m인 강판형교(steel plate girder) 게르버교 이고, 하부 기초공법은 아치교에는 잠함공법, 판형교에는 우물통공법을 적용하였다.
3차 다리건설에서는 상부구조를 2차와는 달리 용접연결 구조를 도입하였을 뿐 모양과 형태가 동일한 강구조이고 하부기초는 모두 우물통공법을 채택 시공하였다.
이 교량은 건설부국도 1호선의 한강횡단 교량으로서 명실공히 대한민국 수도서울의 관문이며 우리 민족과 희비애락을 함께 해온 역사의 증인이다. 시설물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규정에 따라 구교는 1995년 12월에서 1996년 11월, 신교는 1997년 6월에서 1997년 12월에 정밀안전진단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설계하중(DB ·24) 확보에는 지장이 없으나 다리 수명 연장이나 기능 원활을 위해 1998년 1월부터 2000년까지 구교를 보수하였고, 신교는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노면 포장 · 도장 공사 · 점검통로설치 등의 보수공사를 마무리하였다.
2006년부터 2007년 사이에 실시한 안전점검 및 정기진단 결과 교량안전에 저해할 만한 결함은 없다는 결론과 함께 도장 · 볼트체결 · 단면보수 등 일부 손상부위에 대한 보수보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2008년에 모든 보수공사가 마무리되었다.
한강대교를 이용하는 자동차의 평균 통행량은 매년 감소하고 있다. 2000년에는 13만 8천여대가 일일 평균통행량이었지만, 2009년에는 일일 평균 10만 8,262대가 통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