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화중(和仲), 호는 우송재(友松齋). 아버지는 판결사 이유겸(李有謙)이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참봉으로 아버지와 함께 온 가족이 강화로 피난하였다. 곧 의병에 가입하여 광진(廣津)을 수비하던 중 갑곶성(甲串城)이 함락되자 군사들이 모두 무너져 흩어지므로, 홀로 분함을 참지 못하고 물에 빠져 자결을 기도하였다.
그러나 부모가 생존하여 있으므로 죽지 못하고 가족을 데리고 길상산(吉祥山)으로 피난하는 도중 적을 만나 아버지와 함께 적에 대항하였다. 아버지가 적에게 항거하여 굴하지 않는 것을 보고 형 이핵(李翮)과 함께 아버지를 따라 죽으려 하였다.
아버지가 적극 만류하며 말하기를 “나는 나라에 후은(厚恩)을 입어 죽음이 아깝지 않으나, 너희는 서생(書生)이니 죽을 의리가 없다.”고 말하자 이흡이 대답하기를 “아버지께서 죽는 것을 피하지 않으시니, 자식이 어찌 살기를 도모할 수 있습니까? 아버지는 나라를 위하여 죽고, 자식은 부모를 위하여 죽고, 지어미는 지아비를 위하여 죽을 뿐입니다.” 하면서 죽을 결심을 굳혔다.
그러던 중 적이 가족에게 해를 가하려 하자 어머니 윤씨는 적의 포로가 될까 염려하여 불에 뛰어들어 화상을 입었다. 이에 어머니를 업고 형과 함께 도망하다 적의 화살을 맞고 죽었다. 아내 오씨, 형수 김씨도 따라 자결하였다. 그 뒤 충절로써 정문이 세워지고 지평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