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마동에 있었던 공립 실업계 고등학교.
설립목적
연원 및 변천
광복될 때까지 끊임없는 항일운동이 전개되어 광주학생사건 이후 농과 5학년 박증구를 중심으로 독서회 조직활동을 하다가, 1930년 2월 퇴학당하였다. 같은 해 11월 추계대운동회 때에 일본인 교우가 한국인을 차별하자, 민족차별철폐운동을 전개하고 맹휴한 사건으로 임과 4학년 윤수동 등 7명이 퇴학당하였다.
또한, 항일투쟁비밀조직인 화랑회사건이 1945년 4월에 적발되어 농과 4학년 이상운 등 8명과 항일투쟁으로 퇴학당한 독립당원 5명 등 13명이 구속되어 모진 고문과 시련을 당하다가, 끝까지 항거한 이상운 의사는 18세를 일기로 그 해 7월 17일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옥사하였다. 광복 전까지 졸업생 수는 한국인 1,050명과 일본인 999명을 배출하였다.
광복 후 이리농림중학교로 재개교하여 초대 교장에는 이의배(李義培)가 취임하였다. 1952년 3월 3년제 이리농림고등학교로 개편하고, 1958년에 농업토목과, 1967년에 식품가공과, 1974년에 원예과 등이 설치되었다.
1989년 3둴 농업과 · 임업과 · 축산과 · 원예과 · 식품가공과 · 농업토목과의 6개 학과 24학급에 재학생 1,400여 명, 교원 40여 명의 규모로 운영되었으며, 졸업생은 65회에 총 1만4300여 명을 배출하였다.
기능과 역할
현황
참고문헌
- 익산대학(www.iksan.ac.kr)
- 익산시청(www.gojb.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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