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 4월 규장각 직각이었던 고정주(高鼎柱)가 국제적인 개화추세와 신학문에 대한 젊은이들의 학구열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창흥의숙(昌興義塾)으로 설립하였다.
수남학구당(창평향교)의 재산 일부를 기부받아 학교재원으로 하고, 둘째아들 광준(光俊), 사위 김성수(金性洙, 2대 부통령), 외척 김병로(金炳魯, 초대대법원장), 친지 송진우(宋鎭禹, 3대 동아일보 사장)를 불러 외가 이씨의 정자인 상월정에서 영어를 가르친 것이 그 시작이며, 이들이 제1회 졸업생들이다.
개교 당시의 수업연한은 4년이었고, 입학자격은 각 마을에서 매년 1명씩 추천받은 사람만 취학하도록 되어 있었다. 초기에는 학년당 10여 명 내외의 학동이 취학하였으며, 당시의 교과목은 국어ㆍ일어ㆍ수신ㆍ산술ㆍ습자ㆍ창가ㆍ실업ㆍ체조ㆍ가사 등이었다.
1911년 6월창평공립보통학교로 교명이 개칭되었고, 1919년 4월부터 여학생의 입학이 허락되어 처음으로 3명의 여학생이 입학하였다. 1923년 4월 6년제로 수업연한이 연장되었고, 1941년 4월창평국민학교로 교명이 개칭되었다. 한때 30여 학급까지 확장되었으나, 전국적인 이농현상으로 학생이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1996년 3월에 창평초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2010년 3월 현재 6학급에 재학생 116명, 교원 21명이다. 병설로 유치원 1학급 22명과 분교 3학급을 운영하고 있다. 교훈은 ‘정직ㆍ근면ㆍ성실’이고, 특히 ‘근검ㆍ자립정신’을 강조하여 성실한 인간교육에 힘쓰고 있다.
학교방송연구학교(한국교육개발원), 도지정 과학교육시범학교로 지정받아 교수·학습방법개선과 기초학력 정착에 공헌하였다. 200여 평의 강당과 100평의 수영장을 보유하고 있어 학생들의 전인교육에 이바지하고 있다. 2010년 2월 현재 98회 졸업으로 총 8,457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