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은 대용(大用)·계오(桂五). 경상북도 안동 출신. 1916년 할아버지 이상룡(李相龍)을 따라 아버지 이준형(李濬衡)과 함께 중국 동삼성(東三省) 지역으로 갔다.
1921년 무장투쟁단체인 통의부(統義府)가 조직되자 이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적극적인 항일투쟁의 방법을 모색하던 중 같은 해 의주군 청성진(淸城鎭)의 일본경찰주재소를 습격하여 일본인 순사를 살해하였다.
그 뒤 1927년 5월 길림성(吉林省) 반석현(吉林省盤石縣)에 기반을 두고 조직된 한족노동당(韓族勞動黨)에 가입하여 사무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28년 재중국한국청년동맹(在中國韓國靑年同盟)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그 뒤 1934년 5월 청성진 일본경찰주재소의 습격사건과 관련하여 신의주경찰서에 붙잡혀 같은 해 6월 25일 신의주지방재판소로부터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