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예조참판, 이조참판,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07년 부응교로 있으면서 문과 중시에 을과로 급제한 뒤 집의를 거쳐, 광주부윤(廣州府尹)을 지내는 동안 소론 김일경(金一鏡) 등과 교유하였다. 그 뒤 1709년 동부승지를 거쳐 경상도관찰사로 나갔으며, 1711년 노론이 정권을 잡고 있는 때라 또다시 대간의 탄핵을 받아 유배당하는 정치적 고초를 겪다가 풀려 나와, 1721년(경종 1)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하였다.
이듬 해 중앙으로 돌아와 대사간이 되었으며, 같은 해 3월 목호룡(睦虎龍)의 고변에 따라 이이명(李頤命)·김창집(金昌集)·이건명(李健命)·조태채(趙泰采) 등 노론 4대신(老論四大臣)의 처단을 강력히 주장하고, 경종 시해를 모의했다는 노론들을 일망타진한 신임사화에 큰 역할을 하였다.
이 때부터 소론 중에서 준소(峻少) 계열로 활약하면서 대사성·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도승지 등을 지냈다. 1723년 예조참판·이조참판·대사헌·부제학 등을 역임한 뒤 영조가 즉위하자 자헌대부(資憲大夫)의 품계에 올랐다.
1725년 신임사화의 주동 인물에 대한 삭탈관직의 주장이 일어나고, 노론들의 일대 반격이 가해짐에 따라 탄핵을 받아 절도에 안치되었다. 김일경·목호룡과 함께 사형되고, 부사공신녹권(扶社功臣錄券)도 위훈(僞勳)이라 해 삭탈되었다. 이사상이 지은 경종의 시책문(諡冊文)이 『의릉지장(懿陵誌狀)』에 실려 있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경종실록(景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청선고(淸選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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