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성지(誠之). 생원 이찬(李璨)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적성현감 이자하(李自夏)이고, 아버지는 헌납 이치(李致)이다.
1546년(명종 1) 생원시에 합격하고, 1548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에 임명되었다.
이어서 승문원박사로 봉상시직장(奉常寺直長)을 겸하였으나, 1550년 아버지가 직언으로 권신에게 몰려 경술옥사에 연루되어 처형받게 되자 출세에 지장을 받게 되었다. 그 뒤 당금(黨禁)이 해제되자 예조·형조의 좌랑을 거쳐 충청도도사·성균관직강·형조정랑 등을 역임하였고, 영해부사·홍주목사·광주목사(廣州牧使) 등 외직에 계속 임명되었다.
다시 경직인 군자감정을 거쳐, 사옹원정이 되었으나 재직 중 죽었다. 문예(文藝)에 능하여 외삼촌 박계현(朴啓賢)과 함께 당시에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