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홍문관교리, 대사간, 성균관대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입이 무거워 한때 재주를 의심받기도 하였으나, 1735년에 장문의 상소를 올려 8가지 조목으로 나누어 시폐(時弊)를 직서하였으며 그 과정에 영의정 김흥경(金興慶)도 논척되었다.
이로 인하여 영조는 직서하는 자를 우대한다 하여 함열현감에 임명하고 말을 내어주는 특혜를 베풀었으나 실제로는 좌천이었다. 이 상소로 인하여 영의정이 귀향하여 버리고 대사헌·대사간이 갈리는 등 조정에 파문을 일으켰다.
결국 좌의정 김재로(金在魯), 우의정 송인명(宋寅明) 등의 변호로 다시 내직에 보임되었으나 강직한 기개를 굽히지 않았고, 이조정랑·홍문관교리 등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쳐 대사간에 올랐다.
학문이 뛰어나서 성균관대사성·홍문관부제학 등을 여러 차례 역임하였고 전라도관찰사를 끝으로 일생을 마쳤다. 시문집으로 『잡저문고(雜著文藁)』 6책이 있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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