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명서(明瑞). 아버지는 이지걸(李志傑)이다.
1725년(영조 1) 군수로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이듬해 지평이 되어, 삼사의 원활한 운영과 붕당의 폐해를 논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 삼수부(三水府)에 유배되었다.
1년 뒤에 석방되어 필선·장령·헌납·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1729년 산림 출신으로 등용된 집의 박필주(朴弼周), 장령 양득중(梁得中)의 비례(非禮)를 논하다가 산림과 유자(儒者)를 경멸하였다 하여 파직, 성문 밖으로 쫓겨났다.
다시 사간을 거쳐 참의에 올랐으나 직사(職事)를 잘못 처리하여 파면되고, 1742년 다시 승지에 발탁되었다가 연로하다는 이유로 특별히 동지중추부사에 승진하였다. 형조참판·한성좌윤 등을 거쳐 1748년 지중추부사로 기사(耆社)에 들어갔다. 그 뒤 동지의금부사·한성판윤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