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치일(致一), 호는 송사(松史). 서울 출신. 헌종 때 피리의 명인인 이인식(李寅植)의 장손이고, 역시 고종 때 피리의 명인인 이원근(李源根)의 맏아들이며, 가곡의 명창 이병성(李炳星)의 아버지이다.
1892년(고종 29) 장악원(掌樂院)에 입사(入仕)하였으며, 1901년 진연(進宴) 때는 방향(方響), 1902년 진연 때는 편경(編磬)을 담당하였다. 1903년 3월에 가전악(假典樂)이 되었고, 1913년 아악수장(雅樂手長)을 거쳐 아악사(雅樂師)에 승진하였다. 1939년 이왕직 아악부를 사임할 때까지 김영제(金寗濟)·함화진(咸和鎭)·최순영(崔淳永)과 더불어 아악의 보존과 육성에 공헌이 컸다.
특히, 영산회상(靈山會相 : 일명 거문고회상)과 도드리의 연주가 절묘하였다. 1892년 11세 때 무동(舞童)이었던 관계로 궁중정재(宮中呈才)에도 뛰어나 현재 국립국악원에 전승되는 춤은 모두 그의 지도에 의한 것이고, 종묘대제 때 추는 일무(佾舞) 악장(樂章)도 대부분 그의 지도에 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