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훈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보덕, 집의,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성흠(聖欽)
인물/전통 인물
  • 본관여주(驪州)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보덕|집의|대사간
  • 출생 연도1720년(숙종 46)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필기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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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보덕, 집의,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성흠(聖欽). 이훤(李烜)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동욱(李東郁)이다. 아버지는 이도(李度)이며, 어머니는 박태순(朴泰淳)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53년(영조 29)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54년에 검열(檢閱)이 되어 한림(翰林) 권점(圈點: 관리 선발 후보자 밑에 자신의 의사 표시로 0표를 함)에 참여하여 정상순(鄭尙淳)·신응현(申應顯) 등과 더불어 회권(會圈: 차례로 권점을 찍는 것)하였는데, 이에 잘못이 있다는 박치문(朴致文)의 상서로 권점이 무산되자, 지벌(地閥)과 명망도 없이 함부로 권점에 참여하였다는 교리(校理) 이담(李潭)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헌납·정언 등을 거쳐 보덕·집의 등을 역임하였다. 1768년 동지사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갔다가 돌아 왔는데, 청나라에 원망하는 백성이 없는 것은 처음부터 침해하고 독촉하는 요역(徭役)이 없기 때문이라 하고, 큰 일이 있을 때는 역군(役軍)을 국가에서 사서한다는 보고를 하였다.

이어 사간을 거쳐 1773년 대사간이 되었다. 이 때 어보 위조(御寶僞造) 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논핵하여 죄인을 방면하게 한 대관(臺官)의 파직과 죄인의 처분에 대한 이의를 거듭 계청(啓廳)하였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당의통략(黨議通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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