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습회

  • 예술·체육
  • 단체
  • 일제강점기
1932년 10월 아악 보존과 발전을 목적으로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의 노악사(老樂師)들이 중심이 되어 아악의 연습과 연주를 위해 조직한 단체.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사훈 (전 서울대학교, 음악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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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32년 10월 아악 보존과 발전을 목적으로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의 노악사(老樂師)들이 중심이 되어 아악의 연습과 연주를 위해 조직한 단체.

내용

1930년 무렵 이왕직아악부 50여 명의 악인은 김영제(金寗濟)·함화진(咸和鎭)·이수경(李壽卿)·최순영(崔淳永)·김계선(金桂善)·김수천(金壽天)·이용진(李龍振) 등을 제외하고는 모두 신진들이었다.

이습회는 이 젊은 아악 전공자들에게 노악사들의 전통을 계승시키기 위하여 매월 정기적으로 발표회를 가지게 한 모임이다. 당시 이습회의 취지문(청주대학교 민족음악자료관 소장) 중에서 중요한 골자만 간추려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이습회는 매월 1회씩 목요일 밤에 개최하고, 연주시간은 약 2시간으로 한다. 연주방법은 독주 또는 합주로 하되 합주보다 독주에 치중하며, 매회마다 심판원 약간인을 선정, 출연한 곡목을 평정하여 1·2·3등과 특등으로 감정된 자에게는 1년에 한 차례씩 상당한 시상을 한다.

이와 같이, 전통을 익히고, 연마하고, 장려하기 위하여 조직된 이습회는 1932년 10월 13일 제1회 이습회를 개최한 바 있고, 1944년까지 약 150회를 거듭하였다. 오늘날 아악을 계승, 보존하게 된 것은 이 이습회를 통하여 기량을 연마한 데에 힘입은 바 크며, 1930년대 아악의 위기는 이습회를 가짐으로써 그 고비를 넘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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