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사헌부장령, 사복시정, 봉상시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듬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에 들어갔다가, 강화가 함락되자 사복시주부 송시영(宋時榮)이 먼저 자결하였다. 묘 둘을 파서 송시영을 매장하고 하나는 비워놓아, 노복에게 자기를 그곳에 매장하도록 부탁한 다음 활끈으로 목을 매어 죽었다. 특히, 아들에게 전하라는 편지의 글 중에는 ‘살신성인부앙무작(殺身成仁俯仰無怍)’이라는 말이 보인다.
어려서 총명이 뛰어나 10세에 조호익(曺好益)에게 배웠으며, 뒤에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 뒤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강화의 충렬사(忠烈祠)와 회덕의 숭현사(崇賢祠)의 별사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목(忠穆)이다.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신독재유고(愼獨齋遺稿)』
- 『송자대전(宋子大全)』
- 『청음집(淸陰集)』
- 『동계집(桐溪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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