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호조참의, 형조판서,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841년 동지정사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경기도관찰사가 되었다. 1848년 형조판서에 이어 좌참찬으로 『삼조보감(三朝寶鑑)』의 찬집당상(纂輯堂上)을 겸하고, 이어 예조판서에 올랐다. 그 뒤 청녕군(淸寧君)에 봉해지고 공조·이조의 판서, 판의금부사를 역임하였다. 헌종이 죽자 왕의 시장제술관(諡狀製述官)이 되고, 1852년(철종 3) 이후 예조·공조·형조의 판서가 되었다.
이 후 지중추부사 겸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이약우는 위로 삼조(三朝: 순조·헌종·철종)의 권우(眷遇)를 입었고, 아래로 사류(士類)의 추앙을 받아 청요직을 두루 편력하였다. 문장에 뛰어나 이약우의 상소문은 명문으로 유명하였으며, 문사(文詞)는 스스로 일가를 이루었고, 역학·산수에도 정통하였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시문집으로 『문강공유고(文簡公遺槁)』가 있다.
참고문헌
- 『순조실록(純祖實錄)』
- 『헌종실록(憲宗實錄)』
- 『철종실록(哲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경산집(經山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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