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부여 출생. 1919년 11월경 서울에서 국권회복에 뜻을 같이하는 동지를 규합하여 1920년 전국 각지에서 군자금으로 2,600원을 모금하였다.
이를 상해대한민국임시정부 연락요원 박경호(朴敬鎬)에게 인계하려다가 일본경찰에 발각되어 1921년 10월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그 뒤 지하운동을 계속하였으며, 1938년 12월 21일 『정감록(鄭鑑錄)』 비결 중 ‘왜(倭)는 호호망어선(胡胡亡於鮮)’이라는 문서를 이용하여 조선이 독립함으로써 동양을 지배하게 되니 일본은 망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활동을 계속하던 중 잡혀 금고 6월형을 받고 전라북도 군산형무소에서 복역중 고문으로 인한 정신착란증에 걸려 1939년 5월 출옥하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