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범은 해방 이후 『한만교류사연구』, 『중세서양과학의 조선전래』, 『한국과학사상사연구』 등을 저술한 역사학자이다. 1921년에 태어나 1989년에 사망했다. 랴오양상업학교와 일본 메이지학원 고등학부를 졸업하였다. 1946년 동국대학에 입학하여 중국 중심의 동양사에서 벗어나 만주와 몽골 북방민족사 연구에 관심을 기울였다. 일본이나 중국과는 다른 각도에서 동북지역사를 연구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발해사와 불교교섭사 연구에 많은 논문을 남겼다. 법주사에서 천문도를 발견한 이후 우리나라 천문학사를 재검토하는 등 과학사 분야에서도 큰 성과를 이루었다.
1921년 4월 3일 중국 길림(吉林)에서 출생하였다. 본래 그의 가문은 경상북도 성주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호는 취아(醉蓮)이다. 한 평생을 북방민족사(北方民族史) 연구에 바친 역사학계의 원로이자 대표적인 역사학자였다.
랴오양상업학교(遼陽商業學校), 일본 메이지학원(明治學院) 고등학부를 졸업하였다.
그 뒤 학병을 피해 닛산해상화재보험회사(日産海上火災保險會社) 신경(新京)지점에 근무하다가 광복을 맞아 귀국하였다. 1946년 동국대학 문학부 사학과에 입학, 만몽사(滿蒙史)를 전공하였다. 그리고 1975년 동국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6·25 때에는 국민방위군전사편찬위원, 미10군단 중국어번역담당문관으로 활동하였다. 수복 후에는 경기여자초급대학 조교수, 경기대학교 교수를 거쳐 1958년 동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전임강사가 되었다.
1986년 교수로서 정년퇴임할 때까지 문리과대학장 · 박물관장 · 대학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서울대학교 · 연세대학교 ·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와 대학원 사학과에서 동양사 · 한국과학사를 강의하였다.
그리고 대만(臺灣) 중앙연구원역사어언연구소(中央硏究院歷史語言硏究所) 객원연구원, 진단학회 이사, 동양사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그는 특히 문화사관(文化史觀)에 입각해 실증적 연구방법에 의한 논문을 다수 발표하였다.
주요 논문으로는 1955년에 발표한 「여단무역고(麗丹貿易考)」를 비롯해 만몽사(滿蒙史) 연구에 「요대춘유고(遼代春遊考)」 · 「고구려의 요서(遼西)진출기도와 돌궐(突厥)」 · 「기황후(奇皇后)의 책립과 원대(元代)의 자정원(資政院)」 · 「고구려의 성장과 철」 · 「발해왕국의 성립과 고구려유민」 · 「회골상고(回禑쫌袞)와 금대(金代)의 여진(女眞)」 등이 있다.
중국 중심의 동양사에서 벗어나 만주(滿洲) · 몽고(蒙古) 등 북방민족사 연구에 관심을 기울였다. 또, 고구려 · 발해 · 고려의 북방으로의 성장활동 및 북방민족과의 관계사에도 연구관심을 확대하였다. 특히 북방민족사 연구에는 인종적 선입관과 편견이 엿보이는 중국의 역사기록을 경계해야 하며, 일본이나 중국과는 다른 각도에서 동북지역사에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하였다.
한국사에서 거의 접근하지 못한 몽골 · 거란 등 만몽지역과 한반도의 지속적인 상호교류를 사료고증을 통하여 제시하고 있어서 그 후 해당 부분의 연구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발해의 사회구성과 발해 유민(遺民)에 대해 검토하여 발해사 연구의 기초를 놓았다. 고구려 계루부(桂婁部)의 성장 배경이 두만강 하류지역의 철생산에 있다고 한 주장이 계속 발전하여 독특한 철문화론(鐵文化論)으로 전개되었고, 발해 건국의 추축을 고구려인으로 보고 고구려계 발해인의 정치 및 문화상의 위치를 살펴 발해를 한국사 속에 넣는 이론적 근거의 실마리를 제시하였다.
또한, 불교교섭사(佛敎交涉史) 연구에도 많은 논문을 남겼다. 「원대 라마교의 고려전래」 · 「Neiji-toyin전에 보이는 조선출신의 라마」 · 「호승(胡僧) 말라(襪羅)의 고려왕복」 · 「요금불교지이중체제여한족문화(遼金佛敎之二重體制與漢族文化)」 등이 있다. 동북아시아사 내지 교섭사에 대한 문헌연구와 함께 1985년에는 인도 간다라 지방의 불교유적조사단을 인솔, 학술조사보고서 『간다라』I · II(1988)를 간행하였다. 그리고 중국대륙에 개방화의 물결이 일자 1988년 산둥성(山東省) 적산촌(赤山村) 법화원(法華院)의 신라관계 유적지를 탐사하고 이를 처음 국내에 소개하였다.
그리고 과학사(科學史) 분야의 연구로는 1961년 법주사에서 발견한 천문도를 발견한 뒤 시작되어 1966년 「법주사소장의 신법천문도설에 대하여」를 비롯해 「여대(麗代)의 위력(僞曆)에 대하여」 · 「이익(李瀷)의 지동설과 그 논거」 · 「첨성대 존의(存疑)」 · 「김석문(金錫文)의 지전설과 그 사상적 배경」 · 「이마두(利瑪竇)의 윤회설공박과 그 반응」 등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의 천문학사(天文學史)를 재검토하고, 중국 및 중세서양 천문학 및 역법까지 정리하여 당시의 인문학자로서는 하기 어려운 천문학 연구 성과를 남겼다.
저서로는 박사학위 논문 『중세동북아세아사연구』(1976)를 비롯해 『고대의 만주관계』(1976) · 『한만(韓滿)교류사연구』(1989) · 『중세 만주몽고사의 연구』(1988) · 『중세서양과학의 조선전래』(1988) · 『한국과학사상사연구』(1993)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