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전라북도 민속자료(현, 전북특별자치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집은 1500년대에 춘성정(春城正) 이담손(李聃孫)이 마을에 입향하여 지은 것이라고 전하나 안대청 상량 기록으로 보아 1909년에 전체적인 중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채ㆍ사랑채ㆍ안행랑채ㆍ대문채ㆍ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의 몸채에 동서 양측으로 날개를 달아 ㄷ자형을 이루고 있다. 몸채는 각각 2칸의 안방과 대청이 이어지며 대청 동측에 건넌방 대신에 도장을 설치하였다.
도장 남측에는 머리방과 작은 부엌이 있어 동쪽 날개가 된다. 서쪽날개부에는 부엌과 샛방 사이에 마루방을 따로 두고 샛방 전면 상부는 공루를 구성하였다. 안채 전면에는 ㄴ자형 안행랑채가 날개를 벌려 안채를 감싸고 있다.
안행랑채는 방아실, 안변소, 광, 책방으로 구성되었으나 근래에 외양간을 마련하였다. 본래는 초가였으며 책방은 이전에 가빈방으로 사용하였다. 안채와 안행랑채가 엇비스듬히 만나는 곳에 중문이 있다. 이 중문을 나서면 사당을 바라보며 사랑채 뒤로 나오게 되어 있다.
축대 위에 서 있는 사랑채는 맞배지붕의 一자집이다. 각각 2칸의 방과 마루로 구성되었으며, 상량문에 의하면 1864년에 세워졌다. 대문채는 5칸이며 중앙부에 솟을대문을 두었다. 여기에 이문주(李們胄)의 효자 정문(旌門) 현판이 걸려 있으며 밖의 좌우 양쪽에는 하마석(下馬石)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