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시가(時可). 이간(李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응형(李應亨)이다. 아버지는 이인(李訒)이고, 어머니는 홍필세(洪弼世)의 딸이다.
1576년(선조 9)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592년에 장령을 비롯하여 필선·홍문관교리·동부승지·좌승지·우승지·대사간을 역임하고, 이조·병조·예조의 참의, 대사헌·예조참판 등의 청요직을 오랫동안 역임하였다. 1601년에는 청백리의 후보에 올랐던 적이 있으나, 인물됨이 사독(邪毒: 간사하면서 남을 해침)하고, 혼망(昏妄: 정신이 흐릿하고 망령됨)하다는 대간들의 평이 있었다.
권력에 몸을 붙여 사림들을 해롭게 하며 붕당을 일삼아 덕망이 있는 사람들은 이유중을 싫어한다는 평을 받기도 하였다. 실제로 양사에 임직할 때에 이산해(李山海)·유성룡(柳成龍) 등을 탄핵한 바도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의주에 호종한 공으로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에 추록되고 덕원군(德原君)에 봉하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