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을호 ()

유교
인물
해방 이후 『다산학의 이해』, 『다산학입문』, 『다산의 역학』 등을 저술한 철학자.
이칭
현암(玄庵)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0년
사망 연도
1998년
본관
전주(全州)
출생지
전라남도 영광
정의
해방 이후 『다산학의 이해』, 『다산학입문』, 『다산의 역학』 등을 저술한 철학자.
개설

전라남도 영광 출신.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현암(玄庵).

생애 및 활동사항

어릴 때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고, 영광중학과 경성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세 때 서울에서 최승달(崔承達)로부터 이제마(李濟馬)『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을 배워 한의학(漢醫學)에 입문했으며, 20대 초반 경성약학전문학교(京城藥學專門學校)를 졸업하였다. 이후 이을호의 활동은 40대 중반까지의 한의학 연구시기와 40대 중반 이후의 다산 실학 연구시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먼저 살펴볼 것은 한의학 연구시기이다. 이을호는 23세 때부터 해방을 맞던 35세 때까지 고향 영광에 약국 호연당(浩然堂)을 열었고, 조헌영(趙憲泳)이 주간하는 『동양의약(東洋醫藥)』의 간행에 참여하였다. 또한 민족운동을 위한 청년단체인 영광갑술구락부 및 체육단(體育團)에 가담했던 일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1년 반 동안 수감되었으며, 옥중에서 유교 경전을 읽고 동양철학에 입문하였다. 해방 후 영광남녀중학교를 설립하여 초대 교장을 지냈고, 38세 때 광주의과대학 부속병원의 약국장이 되었으며, 42세 때부터 광주의과대학의 강사로 약제학을 강의하였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다산 실학 연구시기이다. 이을호는 45세 때 전남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로 취임하여 동양철학과 다산학을 강의하기 시작하였다. 전남대학교에 재직하는 동안 학내에서는 박물관장 · 문리과대학장을 역임하고, 학외로는 광주시교육회장 · 한국철학연구회장에 선출되었다. 57세 때에는 서울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68세 때부터 79세까지 국립광주박물관 관장을 지냈고, 다산학연구원 원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학문세계와 저서

이을호는 다산 경학 연구의 개척자로서 한국사상사 분야에서 큰 업적을 이루었으며, 다산의 실학사상을 수사학(洙泗學)으로 인식하는 입장을 제시하였다. 나아가 실학을 개신유학(改新儒學)으로 해석하는 관점을 제시하고, 실학의 개념 논변을 검토한 연구 논문을 발표하였다. 또한 한의학과 관련하여 이제마의 사상의학(四象醫學)에 관한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하여 사상의학을 유학사상사 속에 자리잡게 하는데 기여하였다.

저서로는 『다산경학사상연구(茶山經學思想硏究)』(1966) · 『다산학의 이해』(1975) · 『정다산의 생애와 사상』(1979) · 『다산학입문』(1983) · 『다산의 역학(易學)』(1991) 등이 있으며, 다산의 경학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다산사상을 체계화함으로써 다산학을 정립하는데 평생의 심혈을 기울였다. 그 밖의 저서로는 조선후기 실학사상사 전반에 관한 해석을 시도한 『한국개신유학사시론(韓國改新儒學史試論)』(1980)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목민심서(牧民心書)』 · 『사상의학원론(四象醫學原論)』 등이 있다.

참고문헌

『다산학의 이해』(이을호, 현암사, 1975)
『이을호박사정년기념실학논총』(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소, 1975)
『다산경학사상연구』(이을호, 을유문화사, 1966)
집필자
금장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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