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선응(善應), 호는 농은(農隱). 충정공 이준경(忠正公 李浚慶)의 5대손이며, 이사수(李士修)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필행(李必行)이다. 아버지는 이후징(李厚徵)이며, 어머니는 송휘길(宋暉吉)의 딸이다.
1691년(숙종 17)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사간원정언으로 있으면서 지방수령을 탄핵하다가 도리어 체직되어 영해부사 등 지방관을 역임하였다. 1708년 중앙정계로 복귀하여 홍문관에 들어갔으며, 이 때 5개 조항의 잠계(箴戒)를 올려 숙종으로부터 호피(虎皮)가 하사되기도 하였다.
문장이 뛰어나 10여 년간을 홍문관에서 재직하다가 1722년(경종 2)에 승지로 발탁되었고, 이어 충청도관찰사·함경도관찰사를 거쳐 한성판윤에 이르렀다. 청렴결백한 것으로 이름이 있었으며, 기로소에 들어갔다가 죽었다. 시호는 정정(靖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