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주팔(周八). 아버지는 경상도관찰사 이재수(李在秀)이다.
1843년(헌종 9) 무재(武才)를 인정한 세도가 조병구(趙秉龜)가 천거하여 무과에 바로 응시하게 하였으나 불응하자, 왕의 특명으로 과거를 거치지 않고 급제하였다.
1847년에 오위장이 되었고, 1850년(철종 1)에 가덕진절제사(加德鎭節制使)를 거쳐 영원군수가 되어 선정을 베풀어 칭송이 자자하였다. 1857년에 죽산부사를 지냈으나 관직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병을 핑계로 면천에 은거하였다.
이때부터 세상일에 대해서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어버이를 섬기는 데 전력을 다하여 주위의 칭송을 받았다. 후에 효행이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된다는 충청도유생들의 건의로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