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인주(仁州)이며, 자는 관지(觀止)이다. 이자연(李子淵)의 손자이며, 재상을 지낸 이의(李顗)의 아들이다.
음보(蔭補)로 경시서승(京市署丞)에 임명되면서 관계로 진출하였다.
1111년(예종 6) 10월 형부시랑(刑部侍郎)으로 천흥절(天興節)을 축하하기 위하여 요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으며, 1122년 정월에는 동북면병마부사가 되었다. 1123년(인종 1) 12월에는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가 되었고, 1124년 7월에는 7월 어사중승(御史中丞) 김부철(金富轍)과 사은사(謝恩使)로 송나라에 다녀와서 12월에 공부상서 지추밀원사(工部尙書知樞密院事)에 올랐다.
1125년(인종 3) 12월 참지정사(參知政事)가 되었으나, 1126년에는 종형제인 이자겸(李資謙)이 실각하자 그 일파로 논핵되어 황주목사로 좌천되기도 하였다. 1136년 12월 다시 참지정사가 되었으며, 1137년 12월 참지정사 태자소보(參知政事太子少保)를 겸하였고,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에 이르렀고, 1138년 8월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장의(莊懿)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