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자하(子賀). 이신지(李愼之)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지흥해군사(知興海郡事) 이호겸(李好謙)이다. 아버지는 참군(參軍) 이승언(李承彦)이며, 어머니는 춘양군(春陽君) 이래(李徠)의 딸이다. 창녕에 거주하며 아버지·형제들과 함께 김굉필(金宏弼)로부터 학문을 배워 독실한 행실로 이름이 높았다.
후에 스승의 가르침을 배반하고 권신들을 추종하였다. 1504년(연산군 10) 의성현령으로 있으면서 세금을 과도하게 징수하는 등 악정이 심하여 신극성(愼克性)·남경(南憬)과 함께 삼맹호(三猛虎)로 불렸으며, 의성현민들은 이장길을 몹시 미워하여 시를 지어 조롱하였다.
1507년(중종 2) 박원종(朴元宗) 등 중종반정 공신들을 해치려 한다는 무고로 인하여 평안북도 벽동군의 관노(官奴)가 되었다. 그 뒤 심정(沈貞, 1471~1531)의 심복이 되어 1521년에는 평안도병마우후(平安道兵馬虞候)가 되었고, 1631년 심정의 몰락과 함께 몰려나 고향으로 쫓겨났다. 이황(李滉)은 이와같이 전후가 서로 다르게 처신한 이장길을 스승인 정자(程子)를 배반한 형서(邢恕)에 비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