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성, 평안도감사, 예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어서 승지를 거쳐 대사성이 되었는데, 이때 시무책(時務策) 10조를 올려 인사의 공정, 성균관운영의 혁신 등을 논하였다. 다시 승지·이조참판을 거쳐 1710년에 평안도감사가 되었고, 2년 후 예조참판을 거쳐 대사간이 되자 과거의 부정 및 과옥문제(科獄問題)를 준열하게 논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 삭직되었다.
이후 광주(廣州)의 전사(田舍)로 돌아가 경사(經史)의 연구에 몰두하다가, 관직이 복직되어 소환되었으나 곧 죽었는데, 당시의 대표적 청백리의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만정당문집(晩靖堂文集)』
- 『전고대방(典故大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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