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동초(東初) 또는 세장(世章). 충청남도 천안 출생. 일찍이 중국 산둥[山東]의 군벌이던 옌시산[閻錫山] 휘하에서 군관학교 과정을 수료하고 독립운동대열에 참가하였다.
1931년 중국 북경(北京)에서 한족동맹회(韓族同盟會)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방해하고 사전 봉쇄하려는 밀정 신모(申某)를 살해, 제거하는 등 독립투쟁의 저해 세력을 없애는 데 주력하였다.
그 뒤 상해(上海)에서 한국인독립운동청년동맹을 조직하고 활동하는 한편, 한인청년당(韓人靑年黨)과 의열단(義烈團) 등의 조직에 가담하여 극렬한 무장항쟁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10월 31일 교민단의경대원(僑民團義警隊員)으로 임명되어 그곳을 내왕하는 출입국자들의 신상을 파악함과 동시에 독립투쟁가들의 부일(附日)매국행위 여부를 조사, 색출하여 제거하는 등 민족정기확립에 기여하였다.
1931년 12월부터 1933년 11월까지 임시의정원 충청남도 대의원으로 선임되었다. 1933년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난징[南京]지부의 활동요원으로 지명되었다.
1934년 4월 10일 중국 중앙군관학교(中央軍官學校) 뤄양분교[洛陽分校]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뒤, 난징에 머무르면서 김구구락부회(金九俱樂部會)를 개최하여 친목도모와 독립운동자간의 유대강화를 꾀하였다.
1936년 봄 화로항(花露港)의 합숙훈련소에서 훈련을 받는 등 항상 새로운 전술전략을 익히는 데 앞장섰다. 1938년에는 우창[武昌]·한커우[漢口]·한양(漢陽) 등지에서 대일무장전투에 참가하여 혁혁한 성과를 거두었으며 중국군의 칭송을 받았다.
1942년 4월 한국광복군 제1지대에 편입하여 8·15광복 때까지 구국투쟁을 계속하였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