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남도 단천 출신. 중학교를 졸업하고 1922년경부터 교육문제·여성문제 등의 강연에 참여하여 1928년에는 단천여청(端川女靑)주최 강연에, 1929년에는 신간회 자매단체인 근우회순회강연 등에 참여하였다.
1929년 6월 28일에는 신간회 단천부 대표위원·북대표위원회중앙집행위원 등을 맡아 활동하였다. 1930년 4월에는 비밀결사를 조직한 혐의로 조사를 받았으며, 11월에는 신간회 무임소상무집행위원에 선출되었다.
1931년초에는 연설내용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다가 다시 단천군내에 15개 적색노조지부를 조직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 복역하였다.
1936년에는 광주학생운동에 간여하였으며, 1938년부터 1941년에는 평양에서 회사중역으로 공산주의활동을 중지하였다.
광복 직후인 1945년 8월에 평안남도인민정치위원회 총무부장, 1946년 평안남도인민위원장,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총무부장을 역임하고, 1949년에는 중국주재북한대사로 부임하였다가 1952년 내각상업상, 1957년 재정상, 1958년 부수상, 1960년과 1964년 무역상, 1967년 부수상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