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백흠(伯欽), 호는 괴원(槐園). 경기도 양근(楊根)의 벽계(碧溪)에서 출생. 이항로(李恒老)의 아들이다. 1835년(헌종 1)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그 뒤 과거에 나아가지 아니하고 가학(家學)을 수업하면서 은거하였다.
『소학』과 『가례』를 생활의 기본신조로 삼고 사서(四書)를 탐독하였으며, 주자서(朱子書)에 통달하였다. 송시열(宋時烈)을 대의(大義)로서 높였다. 부친의 뜻을 잘 받들었으며 주자학의 연구에 정력을 다 쏟았다.
1846년『주자대전차의집보(朱子大全箚疑輯補)』 70책을 지었는데, 대개 송시열의 「차의」에 기초를 두고 30여가(家)의 제설을 참작하여 지은 것으로, 그 강령대지(綱領大旨)는 부친이 집필하였고 이준이 고증과 해설을 하여 자득(自得)의 설을 밝힌 것이다.
또한 『주자대전집차(朱子大全集箚)』 20책을 지었다. 1852년(철종 3) 홍천으로 이거하였다가 이듬 해 낙상하여 죽었다. 그 밖의 저서로는 『괴원집(槐園集)』 13권 7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