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3년(성종 2) 좌승(佐丞)으로서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임명되었다. 뒤에 관직이 민관어사(民官御事)에 이르렀다.
993년 거란의 소손녕(蕭遜寧)이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많은 관료들이 서경(西京) 이북의 땅을 내어주고 황주(黃州) 자비령을 경계로 삼자는 의견을 내세웠으나 이때 국토를 가볍게 적국에게 넘겨주는 것을 의연히 반대하였다.
그리고 다른 나라의 이상한 법을 따르지 말고 앞의 임금들이 실시하였던 연등(燃燈)·팔관(八關)·선랑(仙郎) 등의 일을 행하여 국가를 보존하자고 주장하였다. 이 때 왕은 이지백의 의견을 존중하였다.
995년 거란에 사신으로 가서 방물(方物)을 바쳤다. 1027년(현종 18) 성종의 묘정에 배향되었고, 1033년(덕종 2) 대광(大匡)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