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형조참판, 대사성, 한성부좌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24년 영조가 즉위할 때 잠시 승지로 있었으나, 노론파가 집권하면서 삭직, 귀양갔다가 1727년 정미환국으로 풀려나왔다. 그 뒤 형조참판·대사성·한성부좌윤·대사간·경기도관찰사·한성부우윤·도승지·대사헌 등을 역임한 뒤 1738년 전라도관찰사로 나가 임소에서 죽었다. 그는 서예에 뛰어나 중화의 「삼진충의비(三陣忠義碑)」·「사간박동현표(司諫朴東賢表)」·「금백이덕성갈(錦伯李德成碣)」과 공주의 「목사박병갈(牧使朴炳碣)」등이 있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경종실록(景宗實錄)』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
-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오세창, 계명구락부,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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