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우자강(于自强). 경상북도 영천 출신. 조선의열단 간부학교(朝鮮義烈團幹部學校)에서 혁명이론과 군사훈련을 받았으며, 황푸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를 졸업하였다.
난징[南京]에서 의열단 지하운동을 전개하였고, 1936년 중앙군특별반(中央軍特別班)을 수료하여 한커우[漢口]에서 선전공작원으로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성을 폭로하였다. 중일전쟁이 일어난 다음해인 1938년 10월 조선민족혁명당이 창설되자 이종희(李鍾熙)·이해명(李海明) 등과 함께 총무조에서 공작하였다.
그러나 1938년 10월 23일 일본에게 우창(武昌)과 한커우가 함락되고, 왕지연(王志延)·최창익(崔昌益) 등이 이끄는 공산주의자들이 조선민족혁명당의 지도력에 반대하여 많은 의용대원을 이끌고 옌안[延安]으로 감으로써 투쟁역량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다.
조선의용대가 1942년 광복군 제1지대로 편입되자, 광복군 총사령부 총무처에서 근무하였으며 제1지대 본부 구대장을 역임하였다. 1943년 11월 총사령부 참모처 3과에 근무하였으며, 1945년 7월 총사령부에 소속되어 활동하던 중 8·15광복을 맞았다.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