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실지(實之), 호는 체소재(體素齋). 이천정(李千丁)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미수(李眉壽)이고, 아버지는 이윤조(李胤祖)이며, 어머니는 백인걸(白仁傑)의 딸이다.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1590년(선조 23)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 이듬해 검열이 제수되었으나 정철(鄭澈)이 파직당할 때 연루되어 삼수(三水)로 귀양갔다. 1592년에 풀려나 다시 검열과호조좌랑을 거쳐 임진왜란이 격심하여지자 소모관(召募官)으로 충청·전라도를 순행하였고, 이어 초계제술문관(抄啓製述文官)이 되어 명나라에 구원을 청하는 주문(奏文)을 초하였다.
1601년 예천군수를 마지막으로 벼슬에서 물러났다. 또, 임진왜란 때 타버린 선대의 실록을 보수할 때 공조정랑 겸 춘추관기사관으로 참여하였다. 시문에 능하였으며, 『해동사부(海東辭賦)』에 그의 작품이 실려 전한다. 좌찬성이 추증되었다.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저서로는 『체소집(體素集)』3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