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평택 출생. 1919년의 3·1운동 때 평택장날을 기하여 독립만세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였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해외로 망명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20년 2월 18일 국내에서 안구현(安九鉉)·오창선(吳昌善)과 같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재무총장 이시영(李始榮) 명의의 문서를 제시하고 관내 일대를 내왕하면서 모금활동을 전개하다가 일본경찰에 잡혔다. 그해 4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