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의 제16대 왕, 인조의 손자로, 혜민서제조, 동지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희빈 장씨와 가까워 숙종의 총애를 받으며 권세를 누리다 갑술환국으로 유배된 종실.
이칭
이칭
동평군(東平君)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701년(숙종 27)
주요 관직
혜민서제조|동지사
관련 사건
신사의 옥
정의
조선의 제16대 왕, 인조의 손자로, 혜민서제조, 동지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희빈 장씨와 가까워 숙종의 총애를 받으며 권세를 누리다 갑술환국으로 유배된 종실.
개설

할아버지는 인조이고, 아버지는 숭선군 이징(崇善君 李徵)이다. 동평군(東平君)에 봉해졌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87년 혜민서제조(惠民署提調)가 되었고, 같은해 동지사(冬至使)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1689년에 주청사(奏請使)로 다시 청나라에 다녀왔다. 혜민서제조문제로 여러 차례 남구만(南九萬) 등의 규탄을 받았으나 그를 총애하는 숙종이 오히려 남구만 등을 처벌하였다.

그 뒤 인빈(仁嬪)의 제사를 받드는 일을 맡게 되어, 토지 100결과 노비 150명을 하사받았다. 한편, 희빈 장씨(禧嬪張氏)와 친하였고, 숙종의 총애를 받았기 때문에 권세를 휘둘렀다.

1690년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기 위하여 공주 오룡동(五龍洞)의 수백호 민가를 강제로 점령하여 추방하였다. 이에 주민 이기양(李基陽) 등이 사헌부에 탄원하여 문제가 야기되자, 그들을 잡아가두어 격쟁(擊爭)을 통한 호소를 사전에 막아 버렸다.

1689년 왕비 민씨가 폐위되고 장씨가 왕비가 된 뒤 주청사로 청나라에 가서 폐비사건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1691년 사은사로서, 1699년에는 사은사 겸 동지사로 각각 청나라에 다녀왔다.

1701년 신사(辛巳)의 옥이 일어나 희빈 장씨가 사사되고 평소 장씨 일가와 친하였기 때문에 이 사건에 연루되었다. 즉, 전에 희빈 장씨 소생의 왕자가 세자로 봉해질 때 세자의 어머니는 중궁이 되어야 한다는 편지를 전달한 사실과, 비(婢) 숙정(淑正)을 양인으로 속량시켜 희빈의 오빠인 희재(希載)에 보내어 심복으로 삼도록 한 사실이 드러나, 결국 절도(絶島)에 유배되었다가 사사(賜死)되었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선원계보(璿源系譜)』
『약파만록(藥坡漫錄)』
집필자
오갑균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